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사사기 2장 13절
바알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나안 땅에서 섬긴 풍요의 신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이 풍요의 신에게 매력을 느꼈고 숭배라는 이름으로 난잡한 섹스를 즐겼으며, 이따금 인신제사를 올렸다.
바알이란 원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주인이었던 이스라엘이 마을과 그의 아내 아스다롯을 섬긴다는 뜻은 주인을 바꾸었다는 말이 된다. 어제 작은언니의 요청으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하였다. 퇴근길이라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을 바라보며 잠시 풍요를 쫓는 세상과 구별된다는 것에 대한 묵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세상과 구별된다는 말의 의미들을 참 여러가지로 해석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리가 아니라 구별임에도 분리라는 뜻을 혼합하여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하나님은 주인을 바꾸는 것을 경고하셨다. 사랑이라는 주인에서 풍요라는 주인을 바꾸었을 때 일어나는 쾌락과 부조리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세상 안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는 뜻은 누가 보아도 그 사람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스펙을 쌓아 세상에서 안정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빛이 되는 일이 아니라 부패한 곳에서 그 부패함과 맛서 싸우는 엘리아의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사랑이 없어지고 기술과 정보가 넘쳐나는 자신의 뜻을 위해 사는 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세워나가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좁은 길인지를 실감이 된다.
조카의 고민을 내 앞에 두고 질문해 본다. 자신의 실적은 윗 상사가 가로채어 갈때 주님은 어떻게 하라고 말할까? 사람들이 사는 게 다 그래~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 라는 말로 상황을 덮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그분의 마음이다. 그런 부조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억울함을 넘어서는 큰 마음이 무엇일까? 그러한 부조리는 주님의 심판에 맡겨야 되는 선택과 그분이 그것을 재신다는 것을 믿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주님~ 조카의 고민을 보니 제 자세가 어떠했는지가 보여집니다. 저도 풍요의 신에 대한 미혹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부조리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없었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을 주인 삼지 않았을 때 억울함에 대한 미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 여호와를 떠나 물이 없는 웅덩이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제거해 주십시오. 주님이 인도하심이 그 길임을 기억하며 당신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사, 가족들의 구원을 여정을 함께 걸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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