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사라에 맞게 대합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잠언 26:13~16
게으름이라는 화두는 누구나 한번쯤은 삶에서 묵상 되어지는 단어이다. 가끔씩 순간적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를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은 바로 앞절에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라는 말씀 이후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의 게으름을 책망하셨다.
나는 종종 나의 게으름을 합리적 사고로 잘 포장하는 경우를 본다. 이게 내 옛 본성이다. 주님이 내게 마음의 감동으로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라는 말씀을 자주 주셨는데, 결단 후 그 결단이 스러지는 경우를 많이 보곤한다.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한 목사님이 잠언의 말씀으로 "게으른 옛 본성과 싸워야 한다"는 메세지를 "게으름"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었다.
그 책에 쓰여진 글에서 게으름의 이유를 선한 의무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한 의무에 대한 열심이 사라지면, 마음은 부패한 정욕에 물들게 된다고 표현하였다.
선한 의무는 무엇인가?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 일에 대하여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말하는 게으름과 세상이 말하는 게으름의 차이를 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늘의 지혜를 구하기를 원하셨고, 우리의 삶이 먹을것과 마실 것처럼 썩어질 것에 노예의 삶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출애굽기는 주님이 사랑하는 백성에게 더욱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었다.
주님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선한 의무에 대한 열심이 사람지는 것이 마음에 부패한 정욕에 물들게 된다는 견해에 공감 되어지는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날과 그렇지 않는 날의 하루는 확연히 다르다. 영적인 게으름이 육적인 게으름을 만드는 것을 종종 내게서 발견한다. 나의 바램은 항상 주님의 지혜안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은 하늘의 것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지혜로 이땅을 통치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 하셨다. 오늘 나는 하늘의 영적 양식을 구한다.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게으름 찾아내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좋은 분이십니다.
나의 시간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아닌 주님을 사랑하는 시간으로 오늘을 풍족하게 채워주소서, 주님의 은총을 입은 여종이 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오늘도 깨우쳐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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