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마가 5장 1 ~ 5
"무덤가에 귀신들린 이 사람은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아닌 사망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족과 격리되고 사회와 격리되어 살고 있는 은둔형 사람이며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귀신들림은 내 안에 영적인 주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일어 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은 하나님의 다스림의 상태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는 내면에 평안이 없었고, 스스로를 자해 하면서 자신이 무가치 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나 자신도 나를 포기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 밖에서 살아가는 영역이 있다면,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영이 주인이 된 영역이다."
주일 설교로 듣게 된 이 말씀에 공감하고 동의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나를 무가치 하다고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으로 괴로워하는 은둔형 외톨이들 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강이 없어지고 어둠에 영에 통치되고 있는 영역들이 계속 발견하고 있음이다.
예수님은 그 한사람을 바다 건너편 까지 찾아 가셨다. 축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이었다. 예수님의 축사는 인격적이었고 광인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며, 어둠의 영을 대적하나 요란스럽지 않았다. 요란스러움은 미디어로 인한 과장된 액션으로 주님의 영광을 희석 시켜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위축 시켜 버렸다.
마태복음 17장에 제자들이 축사를 못하는 것을 주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라는 말씀으로 믿음 없음으로 꾸짖으셨고, 믿음 없음을 한탄하셨다.
예수님의 탄식인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말씀은 이미 지금 이때가 더욱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삶을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믿음이다. 보이는 광인 보다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한 부분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나를 볼 때 내 안에 광인이 발견되기를 기도해 본다.
주님~ 제게 믿음을 부어주십시요. 하나님의 통치를 벋어난 모든 부분을 깨닫는 은혜를 부어주세요.
주님~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항상 기억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요.
주님~ 내안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어두움을 제거할 수 있는 권세를 회복시켜 주십시요.